한국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두 아들 키울 때는 친정부모님의 도움, 어린이집의 도움으로 너무 쉽게 키웠었는데 캐나다에서 처음 독박육아를 시작하면서 막내딸을 임신하고 있었고 캐네디언 남편도 BC 출신이 아니라서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부부의 생활은 이민 초기 3개월은 매일 울고 싸우고 버티는 3중고의 시절이 있었다.
타향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부부와 세남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정착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인 이민자들과 똑같은 시작점이었지만, 아무리 영어를 하는 캐네디언이라도 가족의 울타리가 없는 타지역 사람이라는 점은 마이너리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의 기준은 간단하게 BC 출신으로 가족들이 거주하는 환경을 가진 남편은 메이저리그, 동부출신으로 비빌 언덕이 없는 남편을 마이너리그라고 나누기 시작했다.
캐나다 동부 끝 뉴펀들랜드 섬 출신 마이너리그인 남편을 따라 동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던 이민초기.
동부 뉴펀들랜드 시댁 식구들이 서부로 우리 가족을 만나러 오면 얼마나 아이들이 좋아했는지 외롭고 힘들기만한 타향살이 마이너리그를 벗어나고 싶어 동부 고향으로 가자고 늘 방법을 찾던 우리에게 아주 단호하게 동부 시댁 사람들은 척박하고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니 뉴펀들랜드 고향으로 절대 오면 안된다고 말렸다.
그렇게 고향에 대한 마음을 접고 정착한 시골마을 엘더그로브에서 2016년 처음으로 공동육아라는 캐나다식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엘더그로브 시골마을에서 공식적으로 아이들과 엄마들의 친구관계가 형성되는 곳은 스트롱스타트, 패밀리플레이스, 리틀페더스 같은 무료프로그램이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리고 유치원 입학전까지 그들의 공동육아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가 시골마을에서 나와 같은 마이너리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식의 양육방법을 캐나다식 양육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지난 3년동안 캐네디언 엄마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하는지 외국인의 눈으로 늘 지켜보고 물어보고 직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특히 스트롱스타트에서 매일 만나는 선생님에게 직접적으로 내 상황을 오픈하고 가장 솔직하게 나의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작은 시골동네이기 때문에 육아에 필요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도 바로 동네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무료유아교육 프로그램이었다.
2013년생 막내딸은 2016년부터 엘더그로브 정착하고 곧바로 스트롱스타트, 패밀리플레이스, 리틀페더스 3곳을 동시에 참여해서 세남매 중 가장 성공적으로 독박육아를 공동육아로 바꾼 최대수혜자이다.
덕분에 매주 플레이데이트를 하고 매일 많은 동네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이 된 전형적인 캐네디언의 문화를 즐기는 가족 중 유일한 메이저리그가 되었다.
한국 옛말에 개천에서 용난다더니 이방인 마이너리그 엄마 아빠 사이에서 메이저리그 막내딸이 나온건 2013년 이후 4년 이민생활 중 가장 큰 성공이다.
외롭고 힘든 타향살이에서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동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내 자식 또래의 친구들에게 먼저 잘해주면 저절로 동네 아줌마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을 떠나 같이 독박육아를 하는 같은 엄마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내 진심을 알아주는 동네 친구 하나만 있어도 보수적이고 무료한 캐나다 삶에서 나를 지켜줄 든든한 동아줄이 생길 수 있다.

